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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길 잃은 양을 찾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잘 깨닫고!
성경: 누가복음 15:1-7
눅 15: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눅 15: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눅 15: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눅 15: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눅 15: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눅 15: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눅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1. 날마다 천국을 누리고
한 목사가 불가리아에서 사는 유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일 단 24시간 동안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으면 반드시 예수님을 좋아하게 될 겁니다.’ 그러자 그는 목사님께 이렇게 답했다. ‘좋아요. 대신 딱 24시간 만입니다.’ 목사님은 다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 그럼, 당신은 다음의 4가지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동정녀에게 나신 것, 그리고…’ 유대인은 갑자기 목사님의 말에 끼어들며 이렇게 말했다. ‘예, 그건 엉터리입니다. 난 못 믿어요.’ 그러자 목사님은 그에게 이렇게 답했다. ‘24시간만 믿는 것으로 하면 됩니다.’ 유대인은 다시 이렇게 답했다. ‘아, 좋소.’ 목사님은 이어서 말했다. ‘둘째,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소. 그리고 그는 다시 살아났소. 그 후 승천하셨소. 내일까지만 이것을 믿는다고 약속하시죠?’ 유대인은 이렇게 답했다. ‘네, 내일까지입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와 함께 예수님께 기도합시다.’ 유대인은 ‘여호와시여, 만일 그리스도가 당신의 아들이라면 그로 하여금 날 구원케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목사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신과 약속한 것을 하루 더 연장하고 싶군요.’ 그렇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과 동행하는 나날이 귀하고 복된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주신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날마다 천국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죄인을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왔다. 그 광경을 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비난하며 죄인들과 한통속의 사람이라고 말한다(1-2절).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세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첫째는 길 잃은 양의 비유이고(3-7절), 둘째는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8-10절), 그리고 셋째는 탕자의 비유이다(11-32절). 이러한 세 비유는 세리와 죄인들, 그리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이 비유들의 공통점은 잃어버린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잃어버린 것을 찾는 이의 사랑에도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3.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알고(1-2)
하나님의 사람들은 누구를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알고, 돌이켜 회개하며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눅 15:1-2)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죄인들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수군거렸다. ‘2절’의 말씀을 개역 한글 침례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눅 15:2) 여기‘2절’의 ‘원망하여’는 원어로 <diagogguvzw:디아공귀조>이다. 이는 ‘불평하다, 떠들다’는 뜻은데, 여기서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예수님에 대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불만에 가득 찬 소리를 나타낸다. 우리는 죄인과 함께했던 예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셨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깨닫고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마태복음은 세리 마태의 집에 가서 음식을 드신 예수님과 제자들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비판하는 장면을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0-13)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때 병든 자에게 의원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가르치셨음을 잘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겸손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또한, 나중 된 자로 먼저 될 자가 있음을 알고, 열심히 주를 섬기며 그분을 믿고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란다.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눅 13:30)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한 바울의 고백을 기억하고, 우리 또한 이러한 성숙한 고백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우리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감사함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방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누가복음은 이렇게 기록한다.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5:30) 우리는 죄인을 사랑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깨닫고, 이러한 상황에서 비판의 말을 하기보다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세리 삭개오의 집에 유하러 가는 예수님을 보고 수군거렸는데, 우리는 이러한 어리석은 태도를 보이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눅 19:7) 우리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셨던 예수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눅 7:34) 그렇다. 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셨다. 우리는 그분께서 죄인의 친구이심을 기억하고,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돌이켜 회개하며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마 21:28-31) 죄악 가운데 헤매며 방황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알고 돌이켜 회개하며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고(3-4)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을 찾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고,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눅 15:3-4) 예수님은 이야기를 통해, 한 사람이 양 백 마리중 한 마리의 양을 잃으면 그 양을 찾아 나머지 양들을 들에 두고 찾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구덩이에 빠진 한 마리의 양을 귀히 여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그러한 마음으로 사역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마 12:11) 우리는 죄악된 인간이 모두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가는 부족함 자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음을 알고 감사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지금도 여전히 양을 찾으시고 양을 건지시는 주님을 붙잡고, 그분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겔 34:11-12) 우리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사랑하시고, 지금도 찾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잃은 양 한 마리를 위해 찾고 애쓰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18:12) 그렇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마음을 알고, 우리 또한 그러한 마음으로 영혼 구원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양을 위해 아버지의 마음으로 애쓰는 목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의 무리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음이라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의 무리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겔 34:8) 우리는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주님의 사람으로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15-16) 마음을 강퍅하게 하며 자기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고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한 영혼이 회개하면 하늘 나라에서 잔치가 일어남을 알고(5-7)
하나님의 사람들은 누가 회개하면 하늘 나라에서 잔치가 일어남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한 영혼이 회개하면 하늘 나라에서 잔치가 일어남을 알고, 주의 계명 안에 거하여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5-7) 예수님은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이 돌아오면 그 가운데 기쁨이 넘침을 말씀하신다. 여기 ‘5절’의 ‘즐거워’는 원어적으로는 기쁨이 차고 넘치는 상태를 의미하며,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나타낸다. 우리는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을 깨닫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복음을 잘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알고, 죄 가운데서 벗어나 빛으로 나아오는 복된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겔 33:11) 우리는 죄악의 길에서 돌이키고, 노를 항상 품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미 7:18) 우리는 죄에서 돌이켜 영혼이 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8:23)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 반드시 존재함을 알고, 죄악을 회개하며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잠잠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기뻐하실 주를 바라보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스바냐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3:17) 우리는 아무리 자신의 환경과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될지라도, 지금도 여전히 주께서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고 계심을 기억하며 힘을 내어 믿음의 걸음을 걸어야 할 것이다. 또한, 과거에는 우리가 진노의 자녀였으나 지금은 구원을 받은 자녀로서 주님의 큰 사랑을 누리고 있음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3-6) 그렇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이렇게 큰 사랑을 입고 살아가는 복된 자들임을 깨닫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은 이러한 복된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 자신에게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고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랑이 풍성하신 주님께 시선을 두며 행복한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주의 계명 안에 거하여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 보이는 세계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 회개하면 하늘 나라에서 잔치가 일어남을 알고 주의 계명 안에 거하여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복음 전파에 힘쓰는 충성된 주의 일군으로 사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복음 전파에 힘쓰는 충성된 주의 일군으로 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엡 3:7)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며,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알고, 돌이켜 회개하며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고,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자! 한 영혼이 회개하면 하늘 나라에서 잔치가 일어남을 알고, 주의 계명 안에 거하여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길 잃은 양을 찾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깨닫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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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9. 2. 9. 07:07

기도의 자세.

기도의 자세.

(바른성경) 누가복음 18:13 그러나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향해 눈을 들지도 못하고 다만 자기 가슴을 치며 말하기를 '하나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하였다.

삶의 문제 앞에서 외식하지 않는 자세로, 주님 앞에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 하며, 마음 중심을 다해 기도하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아멘.~^^♡

(영어KJV) 누가복음 18:13 And the publican, standing afar off, would not lift up so much as [his] eyes unto heaven, but smote upon his breast, saying, God be merciful to me a sinner.

(헬라어신약Stephanos) 누가복음 18:13 και ο τελωνης μακροθεν εστως ουκ ηθελεν ουδε τους οφθαλμους εις τον ουρανον επαραι αλλ ετυπτεν εις το στηθος αυτου λεγων ο θεος ιλασθητι μοι τω αμαρτωλω

(히브리어Modern) 누가복음 18:13 והמוכס היה עמד מרחוק ולא אבה אף לשאת את עיניו לשמים כי אם תופף על לבו לאמר אלהים סלח לי החוט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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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2. 23. 06:54

사랑.

사랑.

(바른성경) 마태복음 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아가페의 사랑을 하기를 힘 쓰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마태복음 5:46 For if ye love them which love you, what reward have ye? do not even the publicans the same?

(헬라어신약Stephanos) 마태복음 5:46 εαν γαρ αγαπησητε τους αγαπωντας υμας τινα μισθον εχετε ουχι και οι τελωναι το αυτο ποιουσιν

(히브리어Modern) 마태복음 5:46 כי אם תאהבו את אהביכם מה הוא שכרכם הלא גם המכסים יעשו זא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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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사랑이 넘치는 주의 자녀

성경: 마태복음 5:43-48

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5: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1. 속마음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 열 두명을 직접 뽑았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은 마귀이며 멸망의 아들이다. 그가 나를 팔 것이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깜짝 놀랐다(6:70-71). 그때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큰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속마음은 어떠한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예수님을 이용해 돈 좀 벌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룟 유다과에 속한 사람들일 수 있다. 모든 죄인을 사랑하셨던 예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우리는 그 사랑을 넉넉히 누리고 그 사랑으로 승리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2. 예수님의 천국 복음 전파

본장은 산상보훈이 있는 장이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천국 백성들이 살아야 할 삶의 규범과 생활 헌장을 모세의 율법과의 관계 속에서 전해 준 내용을 기록해 놓은 장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뛰어넘어 모든 인간의 삶이 존재의 본질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다. 예수님은 산에 오르셔서 제자들을 가르치셨다(1). 팔복에 관하여 가르치셨고(2-12), 제자의 참 모습과 사명에 관하여 가르치셨으며(13-16), 율법의 가치에 대하여 가르치셨다(17-20). 한편, 살인과 간음과 이혼과 맹세와 동형 복수법에 관한 모세의 율법을 전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해 주셨다(21-42).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선언을 하신다(43-47). 이 모든 것의 근원적 이유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서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들이 온전해야하기 때문이다(48).

 

3. 원수에게(43-44)

우리 안에는 누구의 생명이 있는가?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예수의 생명이 있다.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주의 자녀가 되어 살아가는 자가 바로 우리이다.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너무나도 사랑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원수도 사랑하신다. 인간은 연약한 자이기 때문에 서로를 미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원수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원수를 사랑해야 할까? 주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주님은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장성한 믿음과 뜨거운 사랑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원수 사랑

원수를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보통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지만 원수는 미워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5:43) 우리는 연약한 자들이어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원수를 사랑하지 못한다. 인간의 능력으로 이것은 불가능 할지 모른다. 하지만 성령님이 도울 때 상황이 달라 질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원수에 대하여 선대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리와 공의를 유지할 의무를 주신다. 개인적인 반감이나 증오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불의하고 야비한 행동을 하게 하는데, 하나님은 원수의 것이라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보호라고 명하신다.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지니라.”(23:4-5) 뿐만 아니라 이웃사랑을 자신의 몸과 같이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19:18)

예수님은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22:39-40) 우리는 자신을 학대하거나 미워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이웃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주 안에서 새 생명을 가진 자로서 예수님이 주신 참 자유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 자유를 잘못된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 바울은 자유로운 자로서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고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5:13-14) 우리 안에는 오직 사랑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함으로 우리가 주 안에 거하고 있음을 스스로 확증해야 한다.

 

박해자를 위하여 기도

우리는 자신의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성령이 충만할 때에 원수를 사랑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았을까?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라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4) 주님으로부터 부어지는 사랑이 우리에게 넘쳐나서 원수를 사랑하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원수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을까? 원수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랑이 충만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25:21-22) 표준 새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거든 마실 물을 주어라. 이렇게 하는 것은, 그의 낯을 뜨겁게 하는 것이며, 주께서 너에게 상으로 갚아 주실 것이다.”(25:21-22) 원수에게 먹을 것과 물을 주는 것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 하다. 그러나 우리가 뜨거운 사랑으로 원수에게 행한다면 원수도 그 사랑으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우리는 다른 이들을 화평케 하고 축복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5:9)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화평케 되는 역사가 있게 될 것을 선포해야 한다.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저주하는 자를 위해 축복하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한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6:27-28) 우리는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 집사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원수를 사랑했고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원수들을 위해 기도했다.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7:60) 성령님이 도울 때 우리도 원수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빛이신 예수님이 임하시면 어두움은 물러간다. 주 안에서 선은 악을 물러가게 한다.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무엇이 최고의 복인가? 악한 자들에게 선을 행하고 승리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복 받은 자들이다. 바울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한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20-21) 우리는 주 안에서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로서 빛으로 살아가야 한다. 상대가 행하는 악과 욕에 그대로 반응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을 빌어 주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9) 원수를 위하여 기도 할 수 있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주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여 주님이 주시는 넘치는 복 가운데 살아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4. 하나님의 자녀(45-47)

하나님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인 은혜를 베푸는 분이시다. 예수님을 마음 가운데 영접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주신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도 크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아직 영접하지 않은 자들에게도 하나님은 은혜를 주신다. 우리는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느끼고 그분을 더욱 알아가기에 힘써야 한다. 우리는 를 사랑하시는 그 큰 사랑을 잘 경험하고 그 사랑을 어느 누구에게든지 흘러 보낼 수 있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의 아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에게 못 마땅한 이웃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원수까지 사랑하는 자들이 될 때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께 기쁨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할 때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동일한 해와 비를 주시는 분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5:45)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래야만 너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5:45)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는 분이시다. 다윗은 찬송 시에서 주님이 지으신 모든 것에 대해 긍휼을 베푸신다고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145:9) 우리는 긍휼의 주님을 기억하고 주의 아들로서 누구든지 사랑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삶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 삶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합하도록 힘써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동안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의 삶에 비춰져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주의해야 할까?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6:1) 하나님께서 주의 뜻을 좇아 살아가는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보응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씨가 우리 안에 거하면 우리는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 거룩하신 하나님을 따라 우리도 힘써 죄악들을 멀리하고 주님을 잘 따라 살게 될 수 있음을 선포해야 한다. ‘는 예수님의 제자인가? 제자로서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13:35)

 

누구든지 사랑

우리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고 있는가? 누구에게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도 하는가? 우리는 자신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을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사랑을 베풀어 준 이들에게 비슷한 사랑, 또는 그 이상의 사랑을 베푸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하는 사랑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아가페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을 흘러 보내며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세리도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함을 말씀하시며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과 달라야 함을 말씀하신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5:46-47) 이 당시의 세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좋지 않았다. 이 세리들은 로마 정부에서 거두어들이는 금액 이상으로 가능한 한 지방에서 돈을 징수하여, 그 여분의 돈을 자기의 것으로 하는 일이 많았다. 대부분의 세리는 민중으로부터 배척과 비난을 받았다. 그들은 유대인 사회에 용납되지 못하고, 그들의 친구로 되는 사람마저 배척되었다.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태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드시자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했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9:10-11) 이런 세리들도 보편적인 사랑은 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기도 했는가?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로 보기도 했다.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셨기 때문이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11:19)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이 참이었음을 알고 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는가? 예수님은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5:20) 우리는 죄인들도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을 기억하고 원수조차 사랑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6:32) 우리는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성령님이 주시는 은혜로 충만한 사랑이 누구에게든지 흘러가도록 힘써야 한다.

5. 온전한 주의 자녀

하나님은 완벽하신 분이시다. 완벽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우리는 어떠한 자들이 되어야 할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5:48) 우리는 온전한 주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성령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주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구별된 자들로서 거룩한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한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11:44)

욥은 하나님께도 인정을 받은 자였다.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2:3) 우리는 욥처럼 악에서 떠난 자로서 주를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시는 빛이신 예수님이 다른 이들에게 드러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 우리 모두가 온전한 주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성령님의 은혜로 우리 가운데 원수조차 사랑할 수 있는 충만한 사랑이 허락되어 사랑이 넘치는 주의 자녀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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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죄인을 부르고 계시는 예수님

성경: 누가복음 5:29-32

5: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5: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5: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1. 성경책의 색깔

어느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런 예화를 들려주셨다. “성경책 표지가 까만 것은 우리 죄가 검기 때문이요. 옆의 색이 빨간 것은 예수님의 보혈 때문이요. 속이 하얀 것은 우리 죄가 희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어떤 교우가 질문했다. “그런데 목사님, 제 성경책 옆은 흰 노란색인데요.”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것은 예수님 살색입니다.”

 

2. 예수님의 사역

레위는 세리이다. 당시의 세리는 죄인의 대명사였다. 그들의 악행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착취로 원성을 쌓았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리인 레위를 부르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되 바로 죄인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가 의인이라고 자부하는 한 우리에게 구원은 임하지 않는다. 구원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죄인 됨을 철저히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구원받는 백성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수 가에서 복음을 가르치시고 난 후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삼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할 것임을 말씀하셨다(1-12).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몸에 문둥병 들린 자를 치유해 주셨다(13-15). 하루는 예수께서 거하시는 집 앞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어서 들어갈 수 없는 지경이었는데, 중풍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이 꾀를 내어 지붕의 기와를 벗기고 중풍병자를 침상 채로 달아 내렸다. 예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죄를 사해 주시고 병도 고쳐 주셨다(16-26). 그 후 예수께서 다니시다가 세관에서 세리인 레위를 보시고 제자로 삼으셨다(27-39).

 

3. 레위집의 큰 잔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사랑을 얼마나 클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다. ‘를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의 사랑은 놀랍고 크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나 주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사람을 차별하면서 그 사랑을 보여주시는 분이실까? 사랑이 풍성하신 예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시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죄인을 부르시는 주님이시다.

오늘 성경 말씀은 세리였던 레위의 집에서 잔치가 있던 중 일어난 일이다. 레위는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열었다. 큰 잔치가 열렸으니 사람들도 많이 모였다.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5:29) 예수님은 사역은 어떠했는가? 예수님은 여러 지역을 다니시며 많은 이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 그리고 그 분의 사역 가운데는 주의 능력이 함께 했다. 바리새인과 교법사들 앞에서도 예수님의 능력은 나타났다.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5:17) 예수님의 능력을 그들도 보았고 알게 되었다.

예수님은 사람을 차별하셨을까? 이렇게 주의 능력이 나타나며 사역했던 예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동등하게 대하셨다. 한번은 역시 세리였던 마태의 집에서 예수님이 음식을 잡수실 때의 일이다. 이때도 마태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9:10) 예수님의 사역가운데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나타났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을 영접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많은 무리 가운데 세리와 죄인들도 앉았고 그들은 예수님을 좇았다.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좇음이러라.”(2:15)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은 차별이 없는 무한한 사랑임을 기억하고 죄인을 부르고 계시는 예수님께 바르게 반응하여 주의 자녀가 되어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4.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비방

우리는 차별이 없으신 예수님의 관점에서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삶을 살고 있을까? 서기관들과 제자들은 이 잔치에서 죄인들과 함께 먹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정죄한다. 세리 레위의 집에서 잔치가 열렸을 때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은 제자들을 비방한다. 왜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냐고 비판한 것이다.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5:30) 왜 그들은 제자들을 비방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들은 율법을 잘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손을 씻지 않으면 먹지도 않는 그들이었다.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7:3) 그들은 예수님도 비방했다. 예수님이 친구들에 의해 지붕을 통해 내려진 한 중풍병자를 향해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비방한 것이다.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만 잘 믿고 있었고 예수님을 잘 알아보지 못했던 그들은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라고 말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5:21) 죄를 사하실 권세가 있으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기도는 또 어떠했을까? 그들은 기도 할 때도 토색, 불의, 간음 하는 자들,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한다고 기도하는 자들이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18:11) 그들은 예수님을 어떠한 분으로 바라보았을까? 그들은 예수님을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말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7:34)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못마땅했다.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15:1-2)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방했지만 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셨다.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19:7)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가신 예수님은 와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며 변함없는 사랑으로 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는 분이되심을 기억해야 한다.

 

5. 병든 자를 위한 예수

예수님은 자신을 비방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어떻게 반응하셨을까?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쓸 데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5:31) 우리가 지치고 힘들 때 주님은 우리에게 손 내밀어 주시는 분이시다. 어느 누구나 주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 또한 주님이 사랑하시는 그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며 사랑해야 한다.

법률가 출신의 대부흥사 피니가 한번은 영국 런던의 휘트필드 교회에 초대되었다. 수 주일에 걸쳐 대 집회를 인도하던 피니가 하루는 그 교회 목사인 캠벨에게 한 제의를 냈다. 그 교회 근처에 있는 한 학교의 강당을 빌려 전도 강연회를 개최했으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캠벨은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마지못해 집회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상 밖에 그 집회는 수많은 결신자를 냈다. 얼마 후 캠벨이 참 모르겠군요, 그때 목사님은 다른 전도자들과 같은 일을 권했을 뿐인데 그렇게도 많은 결신자를 냈으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피니는 맞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지요. 다만 나는 그들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간절한 기도로 그들의 양심에 호소했을 뿐이지요라고 했다.

병든 자들 위하셨던 그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역하고 세상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의 삶이 될 때에 주님은 예비 된 복들로 우리 가운데 채워주실 것이다. 우리는 오직 예수, 오직 주의 사랑,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 주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포로 된 자,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신 좋으신 주님이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4:18-19)

우리가 주님께 나아간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응답해 주실까? 주님께 긍휼함을 입기를 소원하며 나아가 기도한다면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실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고치시며 우리의 병을 치료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두 소경은 예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 질렀고,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의 눈을 뜨게 하셨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9:27-30) 불쌍히 여겨 달라고 따라 오며 소리 지르는 두 소경을 고치신 주님, 믿음대로 되리라 말씀하신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우리의 주님이 되신다. 우리는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최고로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5:3) 죄인을 부르고 계시는 주님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6. 죄인을 부르신 예수님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신다. 주님은 지금도 어떠한 죄를 범한 자들이라도 사랑하신다. 주님은 우리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이 회개하고 천국 백성 되기를 바라신다. 병든 자에게 의원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5:32) 회개하여 주의 자녀가 되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복된 우리가 되어야 한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2:38) 죄인을 부르신 예수님께 나아가 엎드리면 좋은 일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3:19) 주님은 우리가 회개 하고 돌이킬 때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에게 좋은 날을 허락하실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은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 이 땅에 오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0) 죄인인 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감사하고 지금도 죄인을 부르고 계시는 예수님께 반응하고, 그 분의 일에 동참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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