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천국백성으로서 다시오실 주님을 고대하며!

성경: 누가복음 17:20-30

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17: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17:23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17: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17: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17: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17: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17: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17: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17: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1. 회개하기를 기뻐하며

한 중국 여인이 더러운 빨래 한 보따리를 들고서 빨래를 하러 갔다. 그녀는 혹시 누군가가 더러운 빨래를 보고 흉을 보지나 않을까 하여 보따리를 풀지 못했다. 그래서 빨래를 그대로 물속에 담근 채 몇 차례 흔들고는 다시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 여인과 같이 자기 안에 씻어야 할 많은 죄를 일일이 예수님 앞에 내어놓지 않고 단지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는 여전히 악한 일, 도둑질, 거짓말, 시기, 미움 등을 내놓지도 않은 채 기도하고 있지는 않나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주님 앞에 회개하기를 기뻐하고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어 담대하게 믿음의 길을 걷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남을 실족케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것, 그리고 형제를 용서할 것을 당부하신다(1-4). 제자들이 믿음을 더해 주시기를 간구했을 때 예수님은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불가능을 가능케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용기를 주셨다(5-10). 그리고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열 명의 문둥병자들을 치료해 주셨다(11-19). 바리새인들의 하나님 나라에 관한 질문에 대해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가르쳐 주셨다(20-21). 그리고 제자들에게 종말의 여러 징조에 관한 가르침을 베푸셨다(22-37).

 

3. 주의 자녀로서 천국 백성의 삶을 누리고(20-22)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의 자녀로서 어떠한 삶을 누리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주의 자녀로서 천국 백성의 삶을 누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17:20-22) 우리는 천국에 들어간다는 확실한 믿음을 소유하고, 이 땅 가운데서도 성령님과 동행하며 그 천국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마음 가운데 영적 전투가 있을 때, 성령님의 뜻을 따르며 반드시 승리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침노를 당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잘 깨닫고, 천국을 침노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16:16) 또한,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1) 우리는 말세 지말에 바른 믿음을 소유하며 영적으로 미혹을 받지 않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라사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21:8)

뿐만 아니라, 위에서 나신 예수님을 알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저가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저가 자결하려는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8:21-24) 우리는 주님의 자녀로서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16:5-7)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17:13) 삶의 현장에서 불평 불만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의 자녀로서 천국 백성의 삶을 누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번개가 치듯이 임하게 되는 인자의 날을 깨닫고(23-24)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처럼 임하게 되는 인자의 날을 깨닫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번개가 치듯이 임하게 되는 인자의 날을 깨닫고, 자기 믿음을 점검하며 말세 신앙으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17:23-25) 우리는 믿음의 자녀로서 영적으로 깨어 있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거짓 선지자를 잘 분별하고 좋은 열매를 맺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13:21-23) 우리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믿음 생활을 하고,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가라사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21:8)

뿐만 아니라, 주의 날이 반드시 임함을 알고 구름 타고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24:30) 우리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다시 오심을 알고, 기쁨으로 주를 맞이할 수 있게 준비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26:64) 또한, 도적같이 임하게 될 주의 날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기름 등불을 잘 준비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는 주의 거룩한 신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살전 5:2)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자기 믿음을 점검하며 말세 신앙으로 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5:8) 죄악된 세상의 흐름에 따라 흥청망청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번개가 치듯이 임하게 되는 인자의 날을 깨닫고 자기 믿음을 점검하며 말세 신앙으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노아와 롯의 때를 기억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고(26-30)

하나님의 사람들은 노아와 롯의 때를 기억하며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노아와 롯의 때를 기억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며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17:26-30) 우리는 노아의 때와 롯의 때를 기억하며 주님의 신부가 되어 확실하게 믿음 생활해야 할 것이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욱 의식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는 멸시 천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잘 깨닫고 그 사랑에 감격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53:3) 우리는 인간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알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대하며 기쁨으로 믿음 생활해야 할 것이다.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18:33)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고 믿음으로 주의 오심의 때를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11:7) 우리는 노아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건짐을 받고, 그리하여 주님의 때에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편지한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벧전 3:19-20) 우리는 자신이 이렇게 환난과 핍박도 이겨내고 주님을 고대하며 살아가는 하나님 자녀임을 알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은 이러한 복된 인생을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하나님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인생의 최고 우선순위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것을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주님께서 죄인들이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심을 깨닫고, 지금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고,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며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1-3) 영적으로 둔감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노아와 롯의 때를 기억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며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생활에 얽매이지 말고 늘 주님을 기뻐하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고 늘 주님을 기뻐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주의 날을 늘 준비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21:34-36) 또한, 우리는 경건의 훈련에 힘쓰며 늘 성령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 1:13) 주의 자녀로서 천국 백성의 삶을 누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는 자! 번개가 치듯이 임하게 되는 인자의 날을 깨닫고, 자기 믿음을 점검하며 말세 신앙으로 사는 자! 노아와 롯의 때를 기억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며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천국 백성으로서 다시 오실 주님을 고대하며 믿음의 길을 걷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728x90
728x90

말씀: 길 잃은 양을 찾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잘 깨닫고!
성경: 누가복음 15:1-7
눅 15: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눅 15: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눅 15: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눅 15: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눅 15: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눅 15: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눅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1. 날마다 천국을 누리고
한 목사가 불가리아에서 사는 유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일 단 24시간 동안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으면 반드시 예수님을 좋아하게 될 겁니다.’ 그러자 그는 목사님께 이렇게 답했다. ‘좋아요. 대신 딱 24시간 만입니다.’ 목사님은 다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 그럼, 당신은 다음의 4가지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동정녀에게 나신 것, 그리고…’ 유대인은 갑자기 목사님의 말에 끼어들며 이렇게 말했다. ‘예, 그건 엉터리입니다. 난 못 믿어요.’ 그러자 목사님은 그에게 이렇게 답했다. ‘24시간만 믿는 것으로 하면 됩니다.’ 유대인은 다시 이렇게 답했다. ‘아, 좋소.’ 목사님은 이어서 말했다. ‘둘째,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소. 그리고 그는 다시 살아났소. 그 후 승천하셨소. 내일까지만 이것을 믿는다고 약속하시죠?’ 유대인은 이렇게 답했다. ‘네, 내일까지입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와 함께 예수님께 기도합시다.’ 유대인은 ‘여호와시여, 만일 그리스도가 당신의 아들이라면 그로 하여금 날 구원케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목사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신과 약속한 것을 하루 더 연장하고 싶군요.’ 그렇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과 동행하는 나날이 귀하고 복된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주신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날마다 천국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죄인을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왔다. 그 광경을 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비난하며 죄인들과 한통속의 사람이라고 말한다(1-2절).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세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첫째는 길 잃은 양의 비유이고(3-7절), 둘째는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8-10절), 그리고 셋째는 탕자의 비유이다(11-32절). 이러한 세 비유는 세리와 죄인들, 그리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이 비유들의 공통점은 잃어버린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잃어버린 것을 찾는 이의 사랑에도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3.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알고(1-2)
하나님의 사람들은 누구를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알고, 돌이켜 회개하며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눅 15:1-2)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죄인들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수군거렸다. ‘2절’의 말씀을 개역 한글 침례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눅 15:2) 여기‘2절’의 ‘원망하여’는 원어로 <diagogguvzw:디아공귀조>이다. 이는 ‘불평하다, 떠들다’는 뜻은데, 여기서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예수님에 대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불만에 가득 찬 소리를 나타낸다. 우리는 죄인과 함께했던 예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셨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깨닫고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마태복음은 세리 마태의 집에 가서 음식을 드신 예수님과 제자들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비판하는 장면을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0-13)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때 병든 자에게 의원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가르치셨음을 잘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겸손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또한, 나중 된 자로 먼저 될 자가 있음을 알고, 열심히 주를 섬기며 그분을 믿고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란다.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눅 13:30)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한 바울의 고백을 기억하고, 우리 또한 이러한 성숙한 고백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우리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감사함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방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누가복음은 이렇게 기록한다.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5:30) 우리는 죄인을 사랑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깨닫고, 이러한 상황에서 비판의 말을 하기보다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세리 삭개오의 집에 유하러 가는 예수님을 보고 수군거렸는데, 우리는 이러한 어리석은 태도를 보이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눅 19:7) 우리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셨던 예수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눅 7:34) 그렇다. 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셨다. 우리는 그분께서 죄인의 친구이심을 기억하고,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돌이켜 회개하며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마 21:28-31) 죄악 가운데 헤매며 방황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알고 돌이켜 회개하며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고(3-4)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을 찾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고,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눅 15:3-4) 예수님은 이야기를 통해, 한 사람이 양 백 마리중 한 마리의 양을 잃으면 그 양을 찾아 나머지 양들을 들에 두고 찾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구덩이에 빠진 한 마리의 양을 귀히 여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그러한 마음으로 사역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마 12:11) 우리는 죄악된 인간이 모두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가는 부족함 자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음을 알고 감사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지금도 여전히 양을 찾으시고 양을 건지시는 주님을 붙잡고, 그분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겔 34:11-12) 우리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사랑하시고, 지금도 찾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잃은 양 한 마리를 위해 찾고 애쓰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18:12) 그렇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마음을 알고, 우리 또한 그러한 마음으로 영혼 구원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양을 위해 아버지의 마음으로 애쓰는 목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의 무리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음이라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의 무리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겔 34:8) 우리는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주님의 사람으로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15-16) 마음을 강퍅하게 하며 자기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고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한 영혼이 회개하면 하늘 나라에서 잔치가 일어남을 알고(5-7)
하나님의 사람들은 누가 회개하면 하늘 나라에서 잔치가 일어남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한 영혼이 회개하면 하늘 나라에서 잔치가 일어남을 알고, 주의 계명 안에 거하여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5-7) 예수님은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이 돌아오면 그 가운데 기쁨이 넘침을 말씀하신다. 여기 ‘5절’의 ‘즐거워’는 원어적으로는 기쁨이 차고 넘치는 상태를 의미하며,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나타낸다. 우리는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을 깨닫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복음을 잘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알고, 죄 가운데서 벗어나 빛으로 나아오는 복된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겔 33:11) 우리는 죄악의 길에서 돌이키고, 노를 항상 품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미 7:18) 우리는 죄에서 돌이켜 영혼이 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8:23)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 반드시 존재함을 알고, 죄악을 회개하며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잠잠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기뻐하실 주를 바라보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스바냐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3:17) 우리는 아무리 자신의 환경과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될지라도, 지금도 여전히 주께서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고 계심을 기억하며 힘을 내어 믿음의 걸음을 걸어야 할 것이다. 또한, 과거에는 우리가 진노의 자녀였으나 지금은 구원을 받은 자녀로서 주님의 큰 사랑을 누리고 있음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3-6) 그렇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이렇게 큰 사랑을 입고 살아가는 복된 자들임을 깨닫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은 이러한 복된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 자신에게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고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랑이 풍성하신 주님께 시선을 두며 행복한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주의 계명 안에 거하여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 보이는 세계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 회개하면 하늘 나라에서 잔치가 일어남을 알고 주의 계명 안에 거하여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복음 전파에 힘쓰는 충성된 주의 일군으로 사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복음 전파에 힘쓰는 충성된 주의 일군으로 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엡 3:7)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며,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알고, 돌이켜 회개하며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고,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자! 한 영혼이 회개하면 하늘 나라에서 잔치가 일어남을 알고, 주의 계명 안에 거하여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길 잃은 양을 찾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깨닫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728x90
728x90

말씀: 바리새인의 모습을 회개하며 감찰하시는 주 앞에 합당하게 살고!

성경: 누가복음 11:37-41

눅 11: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눅 11: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눅 11: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눅 11: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눅 11: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1. 예수님을 전하고 날마다 주님을 닮기 힘쓰며

한 목사님이 지방 형무소에서 전도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아 남부 지방을 순회하고 있었다. 한번은 그가 묵고 있던 여관집 주인 아들이 그와 동행하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불신자였던 그 젊은이는 ‘나는 목사님의 설교가 몇몇 죄수들에게 감동을 주었기를 바래요. 아마 그러한 설교는 그들에게 분명히 유익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목사님은 젊은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도 내 설교가 유익했나요? 그 후 젊은이는 ‘오, 목사님, 목사님은 죄수들에게 설교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나는 그리스도를 전파했을 뿐이라오. 그리스도는 그들에게만 아니라 젊은이에게도 필요하오.’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 앞에서 은혜로 살아가는 자들임을 인정하며 날마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고 예수님을 닮아가기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가르침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문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자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다(1-4절). 그리고 이어서 벗이 강청하는 비유를 들어 기도의 자세를 가르쳐 주신다(5-13절). 예수님께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을 본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이 예수님을 비난하여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집안끼리 분쟁하면 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어찌 귀신의 왕이 귀신을 내쫓을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하셨다(14-26절). 무리가 모였을 때 예수님은 이 악한 세대에게는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 줄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다(27-32절). 그리고 등불 비유도 말씀하셨다(33-36절). 한 바리새인이 식사 초청을 했는데 예수님께서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이상히 여기자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이 깨끗한 것이 더욱 중요함을 가르쳐 주신다(37-44절). 그리고 율법사가 이에 대하여 이의 제기를 하자 예수님은 율법사들이 오히려 사람들의 짐을 더 무겁게 한다고 책망하셨다(45-54절).

 

3. 손을 씻지 않는 행위를 이상히 여기는 바리새인(37-38)

이 땅 가운데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을 회개하며 믿음 생활에 승리해야 하는가? 우리는 외식을 회개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는 손을 씻지 않고 식사하는 예수님의 행위를 이상히 여기는 바리새인의 모습이 등장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눅 11:37) 한 바리새파 사람이 식사하기 위해 예수님을 초대한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님이 말씀을 마치시자 한 바리새파 사람이 함께 식사하자고 예수님을 초대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이 들어가 식탁에 앉으셨는데.”(눅 11:37) 그런데, 손을 씻지 않는 예수님을 바라본 바리새인은 이 모습을 이상히 여긴 것이다.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눅 11:38) 여기서 ‘손 씻지 아니하심’은 예수님께서 율법에 명시된 정결 의식을 행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바리새인들은 정결 예법을 지키기 위해 식사 전에 손을 씻었다. 그들은 자신들과는 달리 그 의식을 소홀이 대하시는 예수님의 행동을 보고 주님께서 율법의 준수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제자들도 이상히 여겼다.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마 15:2) 그들은 외형적으로 볼 때 율법을 어기고 있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겼고,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읽으셨다.

예수님은 내면에 탐욕과 방탕이 가득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대해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들을 교훈하신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마 23:25)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율법을 잘 지켰던 그들의 내면은 죄가 가득했다. 율법을 준수했지만 외식하며 살았던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마음은 죄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뿐 아니라 우리의 모습도 그와 같을 수 있다.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잠 30:12) 우리는 스스로 깨끗하게 여기지 말고 주님 앞에서 자신의 내면과 행실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악한 생각을 회개하며 마음의 악을 씻고 날마다 주님의 형상 닮아가기를 힘쓰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렘 4:14) 자신의 내면과 행실이 바르다고만 생각하며 살아가지 말고, 스스로 자신을 돌이켜 보고 외식을 회개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탐욕과 악독이 가득했던 바리새인(39)

이 땅 가운데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을 회개하며 믿음 생활에 승리해야 하는가? 우리는 탐욕과 악독을 회개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는 속에 탐욕과 악독이 가득한 바리새인을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등장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눅 11:39) 예수님은 탐욕과 악독이 가득한 바리새인의 모습을 영적인 눈을 열어 본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살펴보면 좋은 것도 있지만 나쁜 것이 더욱 많다. 예수님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마 15:19) 우리는 자신 안에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적질, 거짓 증거, 훼방함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남에게 보이지 않았을지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이러한 부분을 냉정하게 판단하며 회개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자신의 힘으로 변화가 잘되지 않음을 고백하며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고 날마다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뿐만 아니라, 탐욕을 버리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눅 12:20) 하나님께서 영혼을 찾으신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의 모든 소유를 다 놓고 이 땅을 떠나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며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이 바라는 삶을 살아야 한다. 경건의 능력을 소유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성결한 삶을 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약 4:8)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탐욕과 악독이 가득한 죄인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뿐 아니라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가운데 성결함이 부재할 수 있다. 스스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지 말고, 자신을 살피고 탐욕과 악독을 회개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겉과 속을 만드신 하나님 앞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고(40)

이 땅 가운데서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하나님을 깨닫고 믿음 생활에 승리해야 하는가? 우리는 겉과 속을 만드신 하나님을 깨닫고 그분 앞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눅 11:40)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겉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속도 만들었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교훈하신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하나님은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위대한 걸작품임을 깨닫고 자기를 소중히 여기며 외모도 단정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눈에는 보이진 않으나 하나님의 눈에는 쉽게 보이는 속도 거룩하게 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매일의 삶 가운데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 14:1) 창조주 하나님이 보실 때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분과 늘 동행하고 자신의 삶 가운데 부패와 가증함을 회개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자신이 주인이 되어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이러한 복 가운데 거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모든 인간이 전적 부패하여 예수님의 보혈이 아니면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깨닫기를 바란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고 마음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분 앞에서 안을 먼저 깨끗이 하고 겉도 깨끗한 삶을 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 23:26) 눈으로 관찰이 가능한 겉만 깨끗하게 하며 살아가지 말고, 겉과 속을 만드신 하나님을 깨닫고 그분 앞에 합당한 모습으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살고!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자신의 내면을 성숙하게 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구제에 힘쓰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눅 11:41) 마음과 행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그분 앞에서 믿음의 길을 한 걸음씩 잘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시 33:15) 스스로 자신을 돌이켜 보고 외식을 회개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 자신을 살피고 탐욕과 악독을 회개하며 살아가는 자! 겉과 속을 만드신 하나님을 깨닫고 그분 앞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복된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바리새인의 모습을 회개하며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주님 앞에 합당하게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728x90
728x90


728x90
728x90


 

728x90
728x90
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8. 31. 14:00

부르심에 반응하는 삶!, 마태복음 9:9-13

말씀: 부르심에 반응하는 삶!

성경: 마태복음 9:9-13

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9: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9: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 병원

병원은 병든 환자들로 가득 차서 그들의 신음 소리와 악취가 나는 곳이다. 그런데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그 분위기를 싫어하여 환자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병원의 가치는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온다 해도 그들을 사랑으로 받아들여 복음을 심어 주어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 때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복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

본장은 전장인 8장에 이어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과 죄와 죄의 올무에 대한 권세를 가지셨다는 것을 여러 사건을 통해 기록한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요, 인류를 구원하실 참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과 함께 죄인이야말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자이라는 것과 구원에 이를 자가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를 은유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서 본 동네로 오셨다(1). 사람들이 침상에 중풍병자를 메고 오는 것을 보시고 죄 사함을 선포하시고 병을 고쳐 주셨다(2-8). 예수께서 마태라는 세리를 제자로 삼으시고 그의 집에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다. 바리새인들이 비난하자 의원은 병든 자에게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신다(9-13).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의 문제로 예수께 질문하자 예수는 당신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신다(14-17). 또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쳐 주신다(18-26). 그 후 예수께서는 두 소 경을 고치시고, 벙어리를 고치시고, 회당에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27-38).

 

3. 부르시는 예수님(9-11)

예수님은 어떠한 삶을 사셨는가? 예수님은 세리나 창기, 가난하고 병든 자들과 같이 사람들이 멸시하거나 가까이하기 싫어하는 이들과 같이 지내며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구원을 필요로 하고 갈망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심령이 가난하고 죄에 억눌려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우리가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자기를 의롭다 생각하며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의 죄를 자복하며 마음을 비우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마태를 부르신 예수님

예수님은 12제자 중 1명에 속했던 마태를 부르신다. 마태는 세리였는데 그의 사회적 신분과 무관하게 예수님은 마태를 부르셨다. 그 당시 세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죄인이었던 마태를 부르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부르심 앞에 마태는 예수님을 따르며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9:9) 마가복음에서는 마태를 레위라고 기록하며 부르심의 장면을 소개한다. 예수님은 세리 레위를 부르며 자신을 좇으라고 말씀하신다.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2:14)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거부하지 않고 바르게 반응한다.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모든 것을 버리고 제자가 되었다.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5:27-28)

성경에는 예수님이 부르셨던 다른 제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이름은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다. 어느 날 갈릴리 해변을 거니시던 예수님은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신다. ‘나를 따라 오너라.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 앞에 그들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좇게 된다. 잠시 후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다. 그들 또한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게 된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4:18-22) 예수님의 부르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우리 또한 를 부르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어떠한 환경에서라도 주님을 잘 좇는 복된 삶을 살 것을 선포해야 한다.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소식, 복음을 전파하는 생활을 하시며 누구와 함께 하셨을까?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볼 때 연약한 자들과 함께 하셨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도 하시며 사역을 잘 감당하셨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5:29) 세리 레위(마태)의 집에서 큰 잔치를 열었고 다른 사람들과 또 다른 세리도 함께 참석했었다.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5:29) 예수님은 이방인들과 죄인들도 사랑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사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기를 바라셨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이 이방인과 달라야 함을 말씀하신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5:46-47) 우리는 죄인들과 즐겨 식사하셨던 예수님, 죄인인 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한다.

 

비판하는 바리새인들

죄인들과 식사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어떠했을까? 이러한 모습을 보는 바리새인들의 시선은 좋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판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9:11) 죄인들과 함께 했던 예수님을 바라보던 그 당시 사람들의 견해는 이러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11:19) 사람들 눈에는 예수님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셨다. 예수님은 진정한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이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사람들은 죄인의 집을 방문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수군거린다.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19:7) 하지만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비판하는 자들에게도 예수님은 사랑으로 대하셨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는 곳에는 큰 무리가 모여 들었는데, 율법만 잘 지키는 삶을 살았던 자들과 종종 변론이 생기기도 했다. 저희가 이에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둘렀고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9:14-16) 우리는 비판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묵묵히 사역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며, 변론을 즐겨하지 말고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충성된 주님의 일꾼들이 될 것을 선포해야 한다.

 

4. 예수님이 필요한 자(12-13)

예수님은 병든 자들에게 관심이 있으셨다. 예수님은 왜 어두움에 눌린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을까? 예수님께서 병든 자들에게 접근한 것은 그들이 고통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구원의 대상으로 삼고자 했던 자들은 죄로 말미암아 심한 고통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었다. 우리 중에 인생의 고통을 짊어지고 괴로움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있는가?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불쌍히 여기시고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실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그 고통의 질고를 벗겨 주실 주님을 영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병든 자에게 필요하신 예수님

세리들과 식사하는 자신들을 비판했던 바리새인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9:12) 예수님은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시며 그들을 자유하게 하는 분이시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함 받고 자유하게 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자세로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다. 우리는 주님께 어떠한 자세로 기도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대해 말씀하신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18:11-13) 바리새인은 자신의 옳은 행실을 드러냈고 세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아뢰며 기도했다.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자기 행위의 옳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던 세리와 같이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한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주께 범죄 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치소서 하였나이다.”(41:4) 우리는 의 영혼을 고치시고 상처를 치유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147:3) 예수님은 우리를 고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다.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9:11) 의 모든 병을 고치시고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의 주님이 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 것을 선포해야 한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누구를 부르러 오셨는가? 죄인 된 를 부르러 오셨음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9:13) 자신의 모습이 의인처럼 보이는 자들은 회개해야 한다. 자기의 의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자들은 그 의로움을 내려놓고 자신이 얼마나 허물 많은 연약한 자인지 깨달아야 한다. 어느 정도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들 가운데 단 한번이라도 죄를 지은 자들이 있다면, 그 순간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중 하나도 죄인이 아닌 자들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의를 힘입어야만 주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찾는 삶을 살아야 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55:6-7) 우리 가운데 악의를 행하기를 즐기는 자들이 있다면 회개하고 주님께 긍휼히 여겨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일백 마리의 양 중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면 그 양을 더 소중히 여기며, 한 마리의 양이 돌아왔을 때 더 기뻐한다고 말씀하신다.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18:12-13) 우리를 오래토록 참으시고 회개하기를 촉구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잘 깨달아야 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죄인인 나를 불러주신 주님의 사랑에 힘입어 반드시 이 땅 가운데서 주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면서 승리할 것을 선포해야 한다.

 

5. 구원의 주님

우리 주님은 구원의 주님이 되신다. 우리 중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누구인가? 고통 가운데 있는 병든 자만이 예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을 받는 자, 삶의 소망이 없어 고통을 받는 자, 사랑을 줄 사람이 없어 고통을 받는 자들, 모두가 우리 예수님이 필요한 자들이다. 우리가 주님을 간절히 찾을 때 사랑의 예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만나주심을 믿어야 하다. 우리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게 잔치가 열리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15:7) 예수님께서 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셨음을 믿어야 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0) 지금도 죄인을 찾고 계시는 주님의 부르심 앞에 바르게 반응하는 자들이 되어, 왕 되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이 땅 가운데서 나그네의 삶을 사는 동안 믿음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