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TV/금요설교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1. 27. 15:36

그물 속 물고기를 분류.

그물 속 물고기를 분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물의 비유에서 그물 속의 물고기는 천국에 가야 할 영혼이다.

그런데 그물 속 고기가 모두 다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그물 속의 물고기가 어떻게 된다고 말씀하시는가?

주님은 그물 비유에서 그물 속 물고기가 분류됨을 말씀하신다.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마 13:48)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어부들은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은 추려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내버린다.”(마 13:48)

여기서 ‘그물’은 [영] Nets, 짐승이나 새 또는 물고기를 잡는 기구(시 25:15, 35:7, 8, 잠 29:5, 사 51:20, 겔 19:8, 잠 1:17, 전 9:12, 합 1:15-17)이다. 그 주요한 용도는 고기를 잡기 위해서였다(사 19:8, 마 4:18 기타).

고대 이스라엘은 고기를 그리 먹지 않는 편이어서 어부는 없었다.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갈릴리 바다가 저명한 어장으로 되고, 갈릴리 바다 서안의 타리카에아에는 물고기의 절임 공장도 있어, 멀리 로마까지도 수출되었다.

그물은 용도에 따라 약간씩 달랐는데, 새나 짐승을 잡기 위한 그물과 고기잡이용의 그물로 구분할 수 있겠다.

본문으로 돌아가 본다면, 어부들은 물고기로 가득한 그물을 물가로 끌어올린 후,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류한다. 천국 그물에 잡힌 물고기들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천국 그물 안에도 악인이 있다는 강력한 암시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3장에서는 밭에서 자라나는 가라지 조차도 추수 때까지 뽑지 말고 기다릴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추수 때가 되면 가라지는 단으로 묶어 불사르기로 계획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 13:30)

여기서 가라지를 심은 이는 마귀고, 추수 때는 세상의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이다.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마 13:39)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의 마지막이 되면, 추숫군인 천사는 마귀가 심어 놓은 가라지는 단으로 묶어 불사르고 곡식은 거두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마귀가 언제나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알고, 깨어 있어 마귀를 대적하는 그리스도인, 가라지가 아닌 알곡 신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2)

주님의 때가 되면 그물 속의 물고기는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분류되며, 주님의 때가 되면 알곡과 쭉정이는 분류됨을 알고, 우리 모두가 좋은 물고기, 알곡 신자가 되어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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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수요설교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1. 27. 15:35

그물과 같은 천국.

그물과 같은 천국.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예비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가?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물고기를 잡기 위해 놓은 그물과 같다고 말씀하신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마 13:47)

천국은 [영] Kingdom of heaven [그] hJ basileia twn oujranon(he basileia ton ouranon)이다.

이는 하나님 나라와 동의어인데, 마태복음에만 씌어져 있는 말로서 다른 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종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를 주저한 유대인의 감정을 고려하여 ‘하나님’ 대신에 ‘하늘’이라는 말의 ‘천국’을 쓴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태복음 12:28, 19:24, 31:43 등에는 ‘하나님 나라’를 쓰고 있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해 가르치신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 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 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마 22:9-10)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에 초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큰 잔치의 비유를 통해 가르치신다.

잔치를 계획한 주인은 이 잔치에 많은 이들이 초대되어 자리가 가득 차기를 원했다. 그래서 주인은 종에게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채울 것을 말한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 14:21-23)

잔치에 많은 이들이 차고 넘쳤으면 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 천국 백성이 되어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제자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은 깨어 있어 기도하는 자, 성령으로 충만한 자, 기름 등불을 잘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열 처녀의 비유의 이야기는 이렇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마 25:1-4)

우리는 예수님을 잘 믿는 자,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미련한 처녀가 아니라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받아들이고, 천국 백성이 되어, 깨어 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로서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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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새로운 꿈미 요송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1. 27. 10:31

꿈미요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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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누구나 가야 할 하나님 나라!

성경: 마태복음 13:47-50

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13: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사명

노만 멀리어드목사에게 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도 목사가 되었다. 후에 그가 목사직을 맡게 되었을 때 그는 부유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제안들을 거절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고지의 가난한 교회에 가서 시무했다. 이에 대해 그의 부친 멀리어드 목사는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 그것을 감사한다. 내 아들이 연봉 1만 파운드를 받는 궁전에 있는 것보다 150파운드 연봉을 받는 곳에 있는 아들을 보는 것이 더 기쁘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보다도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사하게 여기며 좁은 길을 잘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비유

본장은 그 유명한 씨 뿌리는 비유와 천국 비유가 있는 장이다.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유형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천국 비유를 통해서는 사람이 천국에 가려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와 천국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한편 마지막 부분에는 예수님께서 고향 사람들에게 영접받지 못한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본장은 천국에 관한 일곱 가지 비유들을 모아놓은 천국 비유집인데, 그 내용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그에 대한 설명(1-23), 가라지 비유(24-30), 겨자씨 비유(31-32), 누룩 비유(33), 가라지 비유에 대한 설명(34-43), 밭에 감추인 보화와 극히 값진 진주 비유(44-46), 그리고 그물 비유이다(47-50). 이 모든 비유의 결론으로서 곳간에서 옛것과 새것을 내어 오는 집주인의 비유를 말씀해 주신다(51-52). 이 모는 비유를 마치신 후에 예수님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능력을 행했으나 고향 사람들은 목수의 아들인 예수님을 배척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않으셨다(53-58).

 

3. 그물과 같은 천국(47)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예비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가?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물고기를 잡기 위해 놓은 그물과 같다고 말씀하신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13:47) 천국은 [] Kingdom of heaven [] hJ basileia twn oujranon(he basileia ton ouranon)이다. 이는 하나님 나라와 동의어인데, 마태복음에만 씌어져 있는 말로서 다른 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종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3:2, 4:17, 7:21, 8:11, 10:7, 13:11, 16:19, 18:1, 3, 4, 23, 23:13, 25:1).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를 주저한 유대인의 감정을 고려하여 하나님대신에 하늘이라는 말의 천국을 쓴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태복음 12:28, 19:24, 31:43 등에는 하나님 나라를 쓰고 있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해 가르치신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 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 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22:9-10)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에 초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큰 잔치의 비유를 통해 가르치신다. 잔치를 계획한 주인은 이 잔치에 많은 이들이 초대되어 자리가 가득 차기를 원했다. 그래서 주인은 종에게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채울 것을 말한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14:21-23) 잔치에 많은 이들이 차고 넘쳤으면 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 천국 백성이 되어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제자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은 깨어 있어 기도하는 자, 성령으로 충만한 자, 기름 등불을 잘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열 처녀의 비유의 이야기는 이렇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25:1-4) 우리는 예수님을 잘 믿는 자,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미련한 처녀가 아니라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받아들이고, 천국 백성이 되어, 깨어 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로서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그물 속 물고기를 분류(48)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물의 비유에서 그물 속의 물고기는 천국에 가야 할 영혼이다. 그런데 그물 속 물고기가 모두 다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그물 속의 물고기가 어떻게 된다고 말씀하시는가? 주님은 그물 비유에서 그물 속 물고기가 분류됨을 말씀하신다.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13:48)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어부들은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은 추려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내버린다.”(13:48) 여기서 그물[] Nets, 짐승이나 새 또는 물고기를 잡는 기구(25:15, 35:7, 8, 29:5, 51:20, 19:8, 1:17, 9:12, 1:15-17)이다. 그 주요한 용도는 고기를 잡기 위해서였다(19:8, 4:18 기타). 고대 이스라엘은 고기를 그리 먹지 않는 편이어서 어부는 없었다.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갈릴리 바다가 저명한 어장으로 되고, 갈릴리 바다 서안의 타리카에아(Tarichaea=막달라)에는 물고기의 절임 공장도 있어, 멀리 로마까지도 수출되었다. 그물은 용도에 따라 약간씩 달랐는데, 새나 짐승을 잡기 위한 그물과 고기잡이용의 그물로 구분할 수 있겠다. 본문으로 돌아가 본다면, 어부들은 물고기로 가득한 그물을 물가로 끌어올린 후,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류한다. 천국 그물에 잡힌 물고기들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천국 그물 안에도 악인이 있다는 강력한 암시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3장에서는 밭에서 자라나는 가라지 조차도 추수 때까지 뽑지 말고 기다릴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추수 때가 되면 가라지는 단으로 묶어 불사르기로 계획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13:30) 여기서 가라지를 심은 이는 마귀고, 추수 때는 세상의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이다.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13:39)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의 마지막이 되면, 추숫군인 천사는 마귀가 심어 놓은 가라지는 단으로 묶어 불사르고 곡식은 거두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마귀가 언제나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알고, 깨어 있어 마귀를 대적하는 그리스도인, 가라지가 아닌 알곡 신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3:12) 주님의 때가 되면 그물 속의 물고기는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분류되며, 주님의 때가 되면 알곡과 쭉정이는 분류됨을 알고, 우리 모두가 좋은 물고기, 알곡 신자가 되어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세상의 끝(49-50)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영원한 것일까?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은 언젠가는 끝이 오게 되어 있다. 예수님은 세상의 끝이 반드시 있음을 말씀하신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13:49-50) 세상의 끝이 오면 주님은 천사들을 통해 악인과 의인을 가른 후, 악인은 풀무 불에 던져 넣을 것이다. 그리고 악인은 지옥에서 울며 이를 갈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이들은 다시 어두움에 내어 던져지게 됨을 말씀하신다.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22:12-14) 우리는 세상의 끝날이 반드시 오게 됨을 알고, 자신의 예복을 잘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을 잘 돌아보아, 거룩하지 못한 자, 타성에 젖은 예배 생활을 하는 자가 아닌, 주님을 뵈었을 때 적합한 예복을 갖춘 자,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날마다 회개하기를 힘쓰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리스도인,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또한, 예수님은 가라지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13:40-43) 세상의 끝에는 죄를 짓게 하는 모든 사람과, 주님을 믿고 주님의 사역을 한다고 했지만 불법을 행했던 자, 그들은 풀무 불에 전져질 것이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주께서 다시 오실 그날, 천군 천사가 나팔을 불게 될 그날, 열방 중에서 주의 택하신 자들을 모으실 그 날을 기대하고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영적 전투에 승리해야 할 것이다.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24:31) 영원할 것 같지만 반드시 끝이 오는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 좁은 길을 걸어가면서 힘들고 고단할 지라도, 믿는 자들의 본향인 영원한 천국을 소망 삼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천국의 제자 된 자의 삶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반드시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가며 승리할 수 있다. 예수님은 천국 그물의 비유에서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는 기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확실히 말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 비유를 통해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13:52) 서기관이란 율법을 베껴서 보존하고 해석하여 가르치는 임무를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예수님은 천국의 제자 된 사람들이 이러한 서기관의 임무를 수행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인 자, 천국의 제자 된 자들이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서 이러한 서기관의 임무, 이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또한, ‘옛것과 새것이란 모세의 율법과 예수님의 교훈을 말한다. 집주인이 옛것과 새것을 곳간에서 내어와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처럼,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들은 모세의 율법과 예수의 교훈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여 사람들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으로서 이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 천국 복음을 잘 증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의 힘으로는 잘 할 수 없으나,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한다면 하늘의 지혜로 천국 백성의 삶을 잘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동안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우리는 이렇게 고백한 바울의 고백에 도전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지혜로 사역하고, 감사의 찬양을 하며 승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3:16)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 가운데서 누구나 가야 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으로 반응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성숙한 믿음으로 자라나는 그리스도인,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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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세상의 빛과 소금인 우리!

성경: 마태복음 5:13-16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 소금과 빛

우리는 꽃을 볼 때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꽃이 시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꽃이 그 최고의 특성을 상실할 때, 그것은 거름으로 사용될 수 있다. 또한, 승용차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그 차가 사고가 나서 더 이상 차로써 그 구실을 하지 못할 때, 그것은 쇠붙이로서 다시 사용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소금과 빛의 경우는 어떠한가? 소금과 빛은 그 기능을 일단 상실하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인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잘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가르침

본장은 산상보훈이 있는 장으로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천국 백성들이 살아야 할 삶의 규범과 생활 헌장을 모세의 율법과의 관계 속에서 전해 준 내용을 잘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뛰어넘어 모든 인간의 삶이 존재의 본질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다. 예수님은 산에 오르사 제자들을 가르치셨다(1). 팔복에 관하여 가르치셨고(2-12), 제자의 참 모습과 사명에 관하여 가르치셨으며(13-16), 율법의 가치에 대하여 가르치셨다(17-20). 한편, 살인과 간음과 이혼과 맹세와 동형복수법에 관한 모세의 율법을 전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해 주셨다(21-42).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선언을 하신다(43-47). 이 모든 것의 근원적 이유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서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들이 온전해야 하기 때문이다(48).

 

3. 세상의 소금(13)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세상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5:13) 여기 소금이니의 소금의 의미는 무엇인가? 소금은 구약에서는 부패 방지에 긴요한 물질이었고, 정결과 순수함의 상징어로 등장한다. ‘소금[] jl'm,(melach) [] a{la"(halas) [] Salt이다. 소금의 화학명은 염화나트륨이고 보통 식염이라고도 한다. 천연 해수 중에는 약 2.8% 포함되고, 또한 암염에서도 산출된다. 사해의 물은 보통해수의 6배 가까이의 염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일찍부터 제염에 이용되고, 그들 이스라엘은 세돔(소돔)에서 근대적 제염공업을 발달시키고 있다. 소금은 성막, 성전에서의 제물에 넣어졌다(2:13, 43:24). 소금은 맛이 변치 않는다는 특징을 갖는데, ‘함께 소금을 먹는다는 것은 불변하는 우정의 상징이다. 그리고 [소금의 언약]이라는 표현을 낳았다(대하 13:5와 스 4:14 비교). 그런 점에서 막 9:50에 있는 너희 속에 소금을 두라는 명령과 서로 화목하라는 말이 결합되어 있는 일은 의미가 있다. 소금은 또한 건전한 인격과 언어에도 사용되어 있다(4:6). 반면에, 파괴된 성읍에 소금을 뿌리는 것은 완전한 멸망을 의미한다(9:45). 롯의 아내는 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때 뒤를 돌아다 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19:26). 우리는 예수님도 지상의 재물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경계로 하셨음(17:32, 33)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지옥에 가는 이들은 누구나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을 말씀하신다.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9:49-50)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지옥에 가는 자들이 아니라, 천국에 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형제자매로서 서로 원수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세상의 법대로 다시 살아가는 자가 아닌, 주님의 거룩한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벧후 2:20-21)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세상이 좋아서 다시 세상을 향해 간다면 그의 믿음은 주님께 칭찬받지 못하는 연약한 믿음일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우리는 거룩한 주의 백성,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이다. 우리는 맛을 잃지 않는 소금, 이 소금으로서 반드시 세상 가운데 서 있어야 한다. 세상 가운데서 세상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이들이 아닌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 소금으로서 살아갈 것을 지금 결단하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매일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 없어 내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14:34-35)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소금의 신분을 잊지 말고, 소금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세상의 빛(14)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주님의 제자로서 세상 가운데서 어떠한 신분을 소유한 자들인가?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5:14) 여기 빛이라의 의미는 무엇인가? 빛은 거짓이나 부정의 개념과 반대되는 의미를 지니며 여기서는 죄악된 세상에 복음을 밝히는 성도의 사명을 강조하는 말이다. 빛은 [] r/a('or), r/am;(ma'or) [] fw'"(phos) [] Light이다. 빛은 육안으로 느끼는 비교적 파장이 짧은 전자파이다. 넓은 의미에서 눈으로 느낄 수 없는 자외선, 적외선을 포함하는 경우에는 눈으로 느껴지는 빛을 가시광이라고 한다. 성경에서는 이 자연적인 빛 외에도 초자연적인 빛, 동시에 상징적인 의미로도 많이 쓰인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은 빛이시며(27:1, 119:105, 24:13, 3:20), 하나님은 제 1로 빛을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1:3). 그리고 하나님은 옷 입음 같이 빛을 입으셨다라고도 표현되어 있다(104:2). 빛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궁극적인 행복을 나타내는 생활과 관련해서도 기록되어 있다(36:9). 신약에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에 빛이라하시고(8:12, 9:5, 12:46), 또한 요 1:5에는 하나님은 빛이시라(oJ qeo;" fw'" ejstin)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도 세상의 빛으로 일컬어진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5:14).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빛나는 것은 사람의 역사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빛의 사명은 무엇인가? 빛의 사명은 어두움의 세상에 빛을 발하여 모든 것을 비추는 일이다(5:6, 5:8). 등대 위의 등불이 모든 것을 비추듯이 우리는 어두움의 세계에 참 빛을 보여야 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빛이신 예수님은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면 빛의 아들이 될 것을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12:36)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자신의 죄를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아 빛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를 가졌든지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 십자가 앞에 엎드려야 한다.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고 천국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 또한, 빛의 자녀들은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음을 깨닫고,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않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고후 6:14) 우리는 모두 빛의 자녀가 되어 빛이신 예수님께 지도를 받으며 좁은 길을 잘 걸어가야 할 것이다. 자신의 삶 가운데서 어두움의 유혹이 오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고, 빛의 아들로서 영적 전투에 승리하며 믿음을 잘 지키어 나가야 한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 5:5) 험난한 세상 가운데서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 빛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등경 위에 등불(15)

어두움이 가득한 세상 가운데서 빛으로 살아가는 동안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디에 등불을 두어야 하는가? 등불은 등경 위에 두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5:15)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5:15) 빛을 밝히기 위한 등불은 등경 위에 얹어 두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등불[] r/am;(ma'or) [] luvCno"(luchnos) [] Light, Lamp, Torch인데, 등에 켠 불을 의미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장막이나 집안에 주야로 등불을 켜둘 필요가 있었다. 당시의 실내는 어두워서 주간에도 작은 것을 찾는데는 등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15:8). 그리고 그것은 조명의 목적을 위함이기도 하고 항상 불씨를 손 가까이에 준비해 두기 위해서였다. 이런 일에서 여러 가지 상징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켜있는 등불은 건강과 활기있는 생활을 의미하고, 꺼진 등불은 그 반대를 의미했다(18:28, 13:9, 24:20, 31:18 기타). 하나님은 사랑의 등불(119:105)이시고, 다윗도 이스라엘의 등불로 말해졌다(삼하 21:17-). 다윗의 경우를 생각하자면, 그가 한번 넘어지는 때면 이스라엘은 등을 잃어 암흑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빛나는 등불은 하나님의 보호의 상징(29:3)이었고, 계명은 인생의 등불(6:23), 그리고 눈은 몸의 등불(6:22)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등불이시다(21:231:6-9, 8:12). 우리는 빛 되신 주님, 등불이신 주님을 따라 등불을 비추는 자, 등불을 등경 위에 놓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을 따라가는 자,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삶은 반드시 형통하게 됨을 알고, 그렇게 살아갈 것을 지금 결단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4:18)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빛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말세지말을 살아가는 빛의 자녀로서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고, 믿음과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위해 힘써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6-8) 영적으로 자지 말고 깨어 있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또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2:15)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면 삐뚤어지고 잘못된 세대 가운데서 여러분이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깨끗하고 순수하게 살 수 있을 것이며 하늘의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2:15) 우리는 흠이 없고 순전한 믿음을 가진 자, 악한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서 영적인 복들을 받아 누려야 한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순수한 자이나, 큰 믿음을 가지고 지혜롭게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자들은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는 빛의 신분을 가진 자임을 깨닫고, 등불을 등경 위에 두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빛으로 살아가며 주님께 영광을!

우리는 빛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우리는 빛으로 살아가며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주의 백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빛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 ‘는 할 수 없지만, 성령님께서 도우시면 우리는 빛으로 살아가며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게 될 것이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데, 이는 예수님의 제자라면 그는 이미 빛이요, 소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빛과 소금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자임을 믿음으로 선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여전히 어둡고 썩어져 가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빛과 소금임을 기억하고 주와 동행하며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5:14)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언제 어디서나 비취시도록 그분 앞에서 겸손히 서 있어야 한다. 빛을 받아들이는 자, 그는 빛의 세계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 자신 앞에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본향인 천국을 소망 삼고, 영원한 세계에서 왕 노릇하게 될 그 날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22:5) 우리 모두가 세상의 소금으로 사는 자, 세상의 빛으로 사는 자, 등불을 등경 위에 두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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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1. 11. 17:12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 미가 7:18-20

말씀: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

성경: 미가 7:18-20

7:18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7:19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7:20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1. 인식

하얀색은 검정색 옆에서 보아야 뚜렷하게 구별이 된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 옆에서 볼 때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어린아이는 어른 앞에서 어리다는 인식을 하게 되며, 악한 사람은 선량한 사람 앞에서라야 악한 것을 인식하게 된다. 악한 사람끼리 있으면 구별이 안 되는 법이다. 예를 들면, 동양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보면 매우 잘생겼다고 생각하지만, 서양 사람들 앞에서 보면 그들 스스로 열등의식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하면서 살아가는가? 인간에게 있어서 외모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판단의 기준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상대를 하나님의 잣대로, 하나님의 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자신 앞의 형제자매가 하나님의 작품임을 알고,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이스라엘을 향한 눈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부패를 바라보면서 아쉬움과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함께 새로운 예루살렘인 메시야의 나라가 보인다. 이것은 좌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래서 선지자는 또 다른 확신과 소망으로 말씀을 선포한다. 그의 선포에는 이제 소망이 있다. 감사의 기도는 이 희망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본장은 본서의 결론부에 해당하는데, 지금까지 다루었던 이스라엘의 죄악상, 이에 따른 심판, 그리고 미래의 소망과 남은 자들의 구원에 관하여 종합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미가 선지자는 본장에서 하나님처럼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탄식하면서 임박한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그는 남은 자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미리 예견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미래가 희망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들추어서 그들로 하여금 죄악을 고백하고 돌아오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궁극적인 의미인 구원과 축복을 주려고 했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실패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망을 주심은 여호와의 속죄의 은총과 언약의 신실하심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본장은 철저하게 타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전반부(1-6)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미래의 소망을 동시에 밝히고 있는 후반부(7-20)로 구성되어 있다.

 

3. 주와 같으신 분은 없음(18)

세상 사람들은 이 땅 가운데 많은 신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렇게 많은 신들 중에 어떠한 신이 참 신이라고 생각하는가? 미가 선지자는 주와 같은 신이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은 거짓이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 되신다.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7:18)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주의 자녀들의 죄를 용서하시며 노를 더디하시고 한결같은 사랑을 주시는 분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은혜를 입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킨다.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 이렇게 요청한다.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33:18-19) 우리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함이 넘치는 주가 되신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두 번째 돌판에 십계명을 주게 되는데, 구름 가운데서 강림하셔서 모세의 앞을 지나가시며 이렇게 선포하신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34:6-7) 여호와 하나님은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뿐만아니라, 악과 선에 대해 반드시 보응하신다. 우리는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이 신 중의 신, 왕 중의 왕이 되심을 고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신 중의 신이신 좋으신 주께로 돌아와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15:9-10) 한 영혼을 기뻐하시는 주님은 죄인 하나가 돌아올 때 매우 기뻐하신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지금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죄악 덩어리이지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있을 때 승리의 인생을 살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며 우리를 기뻐하신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3:17) 우리를 구원하신 주,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 인자와 자비가 풍성하신 주, 이렇게 좋으신 주와 같으신 분이 없음을 삶 가운데서 날마다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19)

신 중에 신, 왕 중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여겨주시는가?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신다.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7:19) 여기서 바다에는 원어로 <hL;xum]: 메출라>이다. 이는 깊음, 깊은 곳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완전히 사해 주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죄를 용서해 주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범할 수 있는 행동의 죄, 생각으로 범하는 죄를 회개하기를 기뻐해야 할 것이다. 시편에는 모세의 기도를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90:13-14) 모세는 주의 은혜를 구했다. 그는 주님께 종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인자로 만족케 하여 주시기를 바랬다. 사랑이 많으신 우리 주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심하게 벌하시다가도 불쌍히 여기신다.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3:32)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주께서는 사랑이 그지없으시어 심하게 벌하시다가도 불쌍히 여기신다.”(3:32) 우리는 이렇게 주의 사랑과 관심을 입고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야 한다. 이제는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아래 있음을 기억하고, 죄의 종 노릇에서 벗어나 의의 종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6:14) 우리는 죄의 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주의 제자로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주님만을 섬길 것을 지금 결단하고, 겸손하게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4:5-6) 하나님은 성령님이 시기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지금도 를 불쌍히 여겨주시며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께 날마다 감사하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인애가 풍성하신 주(20)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 되시는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인애가 풍성하신 주가 되신다.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7:20) 하나님은 스스로 말씀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셨는데,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 주신 주가 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아끼지 않고 번제로 드리기까지 순종함을 보고 그를 축복하신다.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22:16-18)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손에게까지 이르는 복도 받게 된 것이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17:7-8)

우리 또한 하나님의 큰 사랑을 입은 아브라함처럼 주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고, 약속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령 충만함을 입은 스가랴는 예언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1:72-74)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사랑의 주가 되신다. 작자 미상의 시인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이라.”(105:8-10)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고 자손을 축복하신 하나님,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인애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의 삶에 관여하시고 를 좋은 길로 인도하기를 원하신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 인애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잘 붙잡고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

우리는 죄악에서 돌이켜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본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선지자의 애정 어린 호소를 엿볼 수 있었다.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우리는 죄악에서 돌이켜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어떠한 고통이나 환난 중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믿는 자들의 힘이 되시는 여호와를 힘입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며 승리하는 믿음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면 우리는 새로워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36:25-27) 성령님께서 도우시면 새로운 마음으로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잘 걸어가게 될 것이다. 날마다 믿음으로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저가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로다.”(130:7-8) 이 땅에 주와 같으신 분은 없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며,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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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주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고!

성경: 시편 108:1-5

108:1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108:2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108:3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108:4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108: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1. 믿음

쟌 윌턴26살까지 인생을 마구잡이로 살았다. 그러던 중 자신의 방랑 생활을 청산하고 우연히 교회에 나갔다가 겨자씨에 비유한 말씀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다. 나에게도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다면 불가능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 뒤 그는 호주머니에 항상 겨자씨를 넣어 가지고 다녔다. 후에 그는 유명한 실업가가 되었고 엘리자베스 세로부터 작위까지 받게 되었다. 그의 성공을 보고 어느 사람이 당신은 왜 겨자씨를 가지고 다닙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좌절할 때마다 이 겨자씨를 보면 다시 용기를 갖게 되기 때문이죠.’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나는 어떠한 좌절, 또는 희망 가운데 있는가? 혹시 좌절과 절망 가운데 있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작은 믿음일지라도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용기

다윗은 선민의 땅이나 이방인 땅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찬양한다. 이러한 찬양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지는 용기의 원천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택한 자들에게 용기를 주시는데 그 용기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나타난다.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의 택한 자며 군대와 같은 큰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주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만군의 왕이 되심을 알아야 하는데, 이는 우리의 힘은 결코 영원하거나 무한하지 않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받아야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본문의 시는 혼합시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각각 비탄시인 시 57:7-11과 시 60:5-12에서 발췌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주목할 것은 본시는 비탄시가 혼합된 형태이지만 찬양 시로 분류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능력은 시인의 찬양의 중요한 이유가 되며(1-5) 나아가 주를 의지하는 자는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됨을 서술하고 있다(6-13).

 

3. 마음을 정함(1)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정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마음을 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을 높여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108:1) 개역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108:1) 다윗은 마음을 정하고, 심령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란 표현에서 하나님만을 향하여 온 영혼이 집중된 시인의 청결한 마음 상태를 알 수 있다. 우리는 마음의 초점과 방향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정하고 전적으로 그분을 의뢰해야 한다. 그리고 심령으로는 원어로 <d/bK: 카보드>이다. 이는 영광또는 심령을 뜻한다. 여기서는 사람의 가장 진실 되고 고귀한 심령을 의미한다. 우리는 마음을 정하고, 마음의 중심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윗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늘 주님을 노래했다.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서도 입을 열어 주님을 찬양했다.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난 후, 다윗은 이렇게 노래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34:1) 다윗은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도 뛰어넘는 큰 믿음, 깊은 신앙을 가진 자였다.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 평생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는 복 받은 자일 것이다. 또한 시편의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146:1-2) 지금까지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면 얼마나 큰가? 우리는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정하고 나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71:15)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정하고, 그분의 이름을 날마다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하나님을 찬양(2-3)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를 찬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지음 받은 자로서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시편 108:2-3) 그는 비파, 수금에게 깨라고 하며 자신이 새벽을 깨울 것을 말한다. 그는 비파와 수금을 향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할 만큼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또한, 만민 중에 감사하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기로 결심한다. 우리는 다윗에게 도전을 받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한다. 고요하고 청아하게 가라앉은 새벽은 하루 중 가장 경건하고 신선한 시간인데, 그는 이 새벽에 주님을 찬양하기를 원했다. 우리도 가장 이른 시간에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복일 것이다. 이 때 영적인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새벽 뿐 만 아니라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찬양했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고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와 권리임을 기억해야 한다.

시편 57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57:8) 새벽을 깨우며 주님을 높이는 자, 그는 복 받은 자이다. 또한 아삽의 시는 이렇게 기록한다.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81:2)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풍악을 잡고 소구를 쳐라. 거문고를 울리며 수금으로 아름다운 가락을 뜯어라.”(81:2)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주님을 노래하는 모습, 그 모습을 주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열방을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열방을 흔들 수도, 안전하게 하실 수도 있는 분이시다. 우리는 공의로우신 그분 앞에 합당한 자로 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공의로우신 주님의 뜻을 깊이 아는 자들이 되어,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복된 자들로 살아야 할 것이다.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열방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 할지라 저가 만민을 공평히 판단하시리라 할지로다.”(96:10) 나는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어떠한 형편과 환경에서도 만물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인자하신 주(4)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그리스도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인자하신 주가 되신다. 다윗은 주의 인자하심을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108:4) 하나님은 인자하심이 크신 주가 되신다. 여기서 인자하심이는 인간의 구원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말한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신 인자한 주가 되신다. 주와 같으신 분이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음을 고백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주께서 옛적에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7:18-20) 인자함이 풍성하신 주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노를 항상 품지 않으신다. 우리를 긍휼이 여기시며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신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의 형편과 삶의 모든 문제를 주님 앞에 올려드리고, 삶 가운데서 감사함으로 주님께 찬양을 올려드리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인생의 길을 다 예비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주님께 삶을 의탁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일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55:9) 우리는 인간의 길, 그리고 생각보다 높으신 주님을 붙잡고 승리하는 삶,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고백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다윗은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8:1) 나는 어떠한 삶을 살기를 기도할 것인가? 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인자하신 주님을 날마다 만나고, ‘를 긍휼히 여기시는 주의 이름, 아름다우신 주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높임을 받으실 영광의 하나님(5)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높임을 받아야 마땅하신 영광의 하나님이 되신다. 우리는 만왕의 왕이 되시는 영광의 하나님을 높이는 복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108:5) 다윗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었다. 다윗이 찬양했던 하나님은 의 하나님이 되심을 기억하고 우리 또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려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148:13) 우리는 언제나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 주를 즐거워하는 멋진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5:11)

우리는 다윗에게 도전을 받고 앞으로 다가올 환난의 시기에도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며, 영광의 하나님을 노래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큰 축복임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도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영광은 온 세계와 우주에 높아져야 함을 고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주의 자녀로서 주의 인자와 진리를 삶 속에서 찬양할 수 있도록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해야 한다. 이 땅에서 믿음생활을 하는 동안, 마음을 정하여 인자하신 하나님, 높임을 받아야 마땅할 영광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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